제가 선교사님께 이런 선물을 받다니…

<내가 선교사에게 이런 선물을 받게 될 줄이야…> 와 세상에 살다보면 이런 일도 있구나! 살면서 수없이 다양한 선물을 받았지만 이런 경우는 난생 처음 받아본다. 그것도 바다 건너에서 온 것이다. 게다가 후원을 받아야 할 선교사가 큰돈(?)을 투자하고 나에게 선물을 하다니! 또한 전세계의 모든 바이커들이 갖고 싶어하고, 타고 싶어하는 아주 오래된 클래식 모델 ‘레드 할리데이비슨’을! 물론 몇 천만원짜리 클래식 바이크를 살 수 있을 정도는 아니고, 대신 ‘미니어처’로 받았는데, 이 얼마나 예쁘고 상징적인 선물인가

내가 권현익 선교사를 처음 만난 건 1995년 5월이었다. 그는 이준수 목사가 프랑스 파리에서 모리아교회를 개척했다가 개인 사정으로 사임하게 되자 후임 목사로 부임한 30대 젊은 목사였다. 이 교회는 파리에서 공부하는 유학생 부부가 주축이 된 전통적인 장로교회였다. 그 당시 나는 영국에서 이른바 성경신학과 목회상담학을 공부했고, 특히 가정의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40대 중년의 만학도였다. 그때 5쌍의 유학생 부부를 대상으로 약 7개월에 걸쳐 격주로 런던-파리를 15차례나 오가며 이른바 ‘부부 성경공부’를 이끌며 서로 삶을 나누게 됐다. 그리고 28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의 관계도 조금씩 무르익어 갔다.

한국 문화로 보면 집사가 이끄는 모임에 담임목사가 자기 교회 평신도 부부와 함께 삶을 노출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경우다. 하지만 기꺼이 겸손한 마음으로 함께한 그였다. 우리는 인생의 선후배로서, 혹은 후원자와 선교사로서, 때로는 인생의 어두운 계곡을 함께 걸었던 친구로서 서로를 격려하고 존경하는 관계로 오늘날까지 사랑의 띠를 이어왔다. 그는 그저께부터 우리 집에 약 3주 동안 머물게 되었다. 몇 끼 정도 같이 밥을 먹을 수 있을지, 아니면 다음에 또 만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죽기 전에 그에게 꼭 보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면……

그가 새로 가정을 이루고 뒤늦게 따뜻한 잠자리에서 편하게 자고 일어나고 아내가 준비하는 아침 식탁에서 환하게 웃고 감사의 기도를 바치는 여생의 모습이다.이를 간절히 바란다(인간적으로 까닭은 구약에서 구·텐(전 9:9)와 신약에서 장·텐(요점 10:10)를 강조한 그때의 심정을 아직 끝내지 못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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